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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아산 은행나무길 마라톤을 즐겁게 달리고 왔습니다
작성자 이범형 - 2019-11-14 오후 6:22:45
지난 해, 아산에 살고 있는 친구가 뜬금없이 “아산에서 개최하는 마라톤을 뛰어보라”는 참석 권유로, 태어나서 처음으로 지난해 10km 마라톤이란 걸 했었는데, 이후에 이런저런 이유로 달리기에 대한 생각들은 잊어버리고 살았었습니다.주말이나 휴일이면 어떤 이유를 붙여서라도 잡다한 운동을 하고 지내던 일상의 삶에서, 딱히 달리기에 대한 강렬한 끌림의 기억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이유도 없었던 터라, 그저 다른 운동들처럼, 하나의 움직이는 행위라고 무덤덤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여름이 절정으로 치닫던 어느 날, 문득 은행나무 가로수 길을 달리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맞다! 11월에 아산에서 달리기를 했었지?”

지난 해 은행나무길 달리기를 한 이후에, 마라톤에 대한 기억보다 아산에 대한 좋은 추억들이 생겨나서, 대회 참가 이후 다섯 차례 아산 나들이를 왔었습니다.
바람이 부는 날 바람이 스쳐지나가는 것처럼, 다른 사람에게는 전혀 관심꺼리가 아닌 ‘그저 지나가는 행인 1명’이 아산에 왔다 갔던 일에 불과하겠지만, 온양에서 꽤 먼 거리의 서울에 살고 있는 내게 있어서, 어떠한 아주 작은 이권이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오는 것도 아니면서 아산을 찾는다는 것은, 어지간한 마음을 먹지 않으면 올 수 없고, 쉽게 올 수 있는 거리도 아닌 곳을 대여섯 번이나 찾아온 것은 꽤나 큰 사건임에 틀림없었습니다.

지난 해 마라톤을 하고서, 열댓 명의 친구들을 이끌고 아산과 온양을 둘러보며 현충사와 ‘은행나무길’과 온양전통시장과 ‘외암마을’을 둘러보기도 하였고, 겨울에는 스물 댓 명의 친구들을 데리고 와서 외암마을에서 하룻밤 민박을 하고 저잣거리에서 맛갈진 음식들도 먹고, 설화산을 오르고 신정호 관광단지를 둘러보기도 하였고, 이후에 친구 몇 명과 자전거를 타고 평택에서부터 아산호를 건너 공세리 성당과 삽교호를 거쳐 곡교천을 따라 온양온천까지 달려보기도 하고, 신창에서 삽교호를 돌아 당진에서 다시 넘어 평택까지 달려보기도 했습니다.

화양연화(花樣年華)라는 말이 있습니다.
‘꽃의 문양이 연중에서 가장 화려한 때’ 라는 말로, 인생의 가장 화려한 시기를 일컫는 말이라고 하는데, 꽃이 화려한 시기가 있는 것처럼, 인생에서도 절정의 순간이 있고, 나무에게도 가장 화려한 시기가 있습니다.
모든 계절이 계절 나름대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을 때, 가을의 단풍은 그 화려함의 극치에서 붉게 물들고, 노랗게 터져버린 은행나무의 잎은 환희의 절정을 보여주는 시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유교를 숭상하던 우리나라에서는 공자가 ‘행단목‘ 아래에서 제자를 가르쳤다고 하여, 성균관을 비롯한 향교나 서당에 가면 의례히 은행나무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은행나무는 국제 자연 보존연맹(ICUN) 적색목록에 ‘멸종위기종‘으로 등재되어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변에서 은행나무를 흔하게 볼 수 있는 나무를 그렇게 분류했다는 게 이해할 수 없을지 모르나, 야생에서는 인간의 도움없이 군락을 이룬 경우가 거의 없어서 멸종위기종으로 지정했다고 합니다.

그 절정의 가을에 노란 은행나무길이 길게 늘어져 있는 우리나라 10대 아름다운 가로수 길에 선정되었다는 은행나무 길을 달린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울 것인지...천년의 사랑이 담긴 은행나무 침대를 찾아오는 것도 아닌데, 올 때 마다 은행나무 길을 찾습니다.

그래서 달려보기로 했습니다.
그 아름다운 은행나무 길을 달려보기로 했습니다.
환갑이 지난 나이에 10km를 처음 달려 본 왕초보가 ,다시 일 년이 지나서 또 달려보겠다고 먼 아산까지 온 또다른 이유 중에는 여지껏 내가 마셔본 막걸리 중에서 몇 번째로 꼽을 수 있는 맛있는 온양의 막걸리 한 잔을 만나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아무튼 달리기를 하기로 마음먹고 준비를 했습니다.
제일 먼저 ‘마라톤에서 지는 법‘이라는 책을 한 권 샀습니다.
히히덕거리며 몇 페이지 읽다가 덮어 버렸지만..그래도 내 딴에는 나름 마음의 준비부터 한다고 했던 행동이었습니다.

그리고 1주일 정도는 퇴근하여 여의도 공원을 몇 번 달려보기도 하면서 나의 달리기 실력을 가늠해 보기도 하고, 주변의 음주 유혹에도 적당한 핑계꺼리를 만들어 사양하고 가볍게 걷기라도 하면서 달리기 준비를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누군가 같이 달리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인천의 마라톤 동호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친구에게 “같이 달릴 수 있는 친구들이 있으면 함께 달리자”고 얘기를 했더니 고맙게도 열 명이 넘는 친구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그리고 스타트 라인에 섰습니다.
곡교천변에 있는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친구부부와 동호인들을 데리고 온 친구를 제외하고 모두 낯선 사람들속에 섞여서 달렸습니다. 전문적으로 달리는 런너들이 본다면 아주 우스운 행동일지 모르나, 내 실력을 모르기에 조금은 천천히 내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달렸습니다. TV에서 마라톤 하던 사람들이 음수대에서 물을 마시는 모습이 멋져 보여서, 일부러 그 곳에서 물도 두 번이나 마셔보고 중간정도의 실력으로 달렸는데,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 단순한 달리기라는 운동을 열정적으로 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내가 이해 못하는 그 많은 사람들 속에 묻혀서 나도 달리고 있었고, 아침에 택시를 타고 오는데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이야기가 라디오에서 나왔던 걸 기억하면서 어쩌면 달리는 것이 각자의 삶에 알지 못하는 좋은 어떤 것들을 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렇게 달려 Finish라인을 통과하고..
그리고 긴 줄을 서서 내 기록증의 출력을 하고서, 막걸리와 국수로 배를 가볍게 채우고서,
인천에서 온 친구들을 데리고 아산 구경을 갔습니다.

단풍이 빨갛게 물든 현충사를 한 바퀴 돌아보고, 인물동성론을 주장했던 외암 이간 선생이 살았던 외암민속마을도 둘러보고 입구에서 식사를 하며 온양에서의 마라톤 마무리를 했습니다.

같이 갔던 일행들은 오랫동안 마라톤을 했던 사람들인지라 여러 대회에 참가했던 터였는데 대체적으로 호평을 하더군요.
“지방 마라톤 대회인데, 참 신경 많이 쓴 것 같다. 음식도 맛이 있었고 단지 인원이 많아서 조금 혼잡한 것을 제외하면 참 좋은 대회인 것 같다.”라고..
그냥 좋았습니다.
내 작은 권유가 씨앗이 되어 함께 뛰었던 친구들이, 좋은 곳에서 기분 좋은 달리기를 하였다며 즐겁게 머물다 간 시간이었습니다.

시인 김사인 <화양연화>라는 시 일부를 가져와 봅니다.

모든 좋은 것들은 흘러가는 것,
잃어버린 주홍 머리핀처럼
물러서는 저녁 바다처럼
좋은 날들은 손가락 사이로 모래알처럼 새 나가지
수염은 희끗희끗해지고
짓궂은 기간은 눈가에 내려앉아 잡아당기지
어느덧 모든 유리창엔 먼지가 앉지 흐릿해지지.
어디서 끈을 놓친 것일까. 아무도
우리를 맞당겨주지 않지
어느 날부터. 누구도 빛나는 눈으로 바라봐주지 않지.
눈멀고 귀먹은 시간이 곧 오리니
겨울 숲처럼
더는 아무것도 애닲지 않은 시간이 다가오리니..<중략>




이제 그 화려했던 은행나무의 기억들도
시간 한 조각의 파편속으로 사라지고
다시 한 겨울이 지나 또 다시 움트는 세월위에
화려한 꿈들이 다시 피어나려나.

대회를 준비하고 진행하신 관계자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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